본문 바로가기

영상

부당거래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었고 몰입력도 좋았다.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하나라도 무언가 이해할 수 없거나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영화에 완전히 몰입할 수가 없게 된다.

[최종병기 활]이 그랬다. 추격장면만큼은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긴장감도 속도감도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부진했다. 그래서 그런지 과하게 감정을 몰아가는 부분도 있는 듯했다.

이야기가 좋으면 과하다 싶은 장면이나 인물이 나와도 그 이야기와 맞물려져서 오히려 하나의 톡톡 튀는 재미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반면 이야기 자체가 부실하다 느끼면 조그마한 흠도 크게 확대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최종병기 활]에서 느꼈던 그런 아쉬움을 [부당거래]를 통해 완전히 해소한 기분이다.

[부당거래]에는 착한 놈이 없다. 주요 인물로 나오는 경찰도, 검사도, 조직폭력배도, 심지어 기자까지 착한 놈은 한 사람도 나오질 않는다.

나쁘지 않은 사람이 나오긴 한다. 매일 자신보다 나이 어린 검사 놈에게 무르팍을 까이는 소시민 공 수사관이 나오고, 범인으로 연기하는 ‘배우’의 아내와 딸만이 나쁘지 않은 사람으로 나올 뿐이다. 아내는 지적 장애가 있고 딸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라 자신들이 무슨 짓을 당하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약자 중의 약자다.

이렇듯 착한 놈이 없으니 평소 다른 영화처럼 내가 주로 감정이입이 되던 주인공도, 그 외 주요인물도 없다.

한마디로 내 편이 없는 영화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처음엔 객관적으로 사건과 모든 인물을 상황에 따라 쫓게 된다. 그리고 내용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극단으로 몰리는 최철기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어둠, 혹은 악을 인식하게 된다.

또, [부당거래]는 상당히 어두운 영화다. 그럼에도 중간마다 미소 짓게 하는 부분 부분이 영화의 강약을 조절하며 어둠에만 매몰되지 않게 한다. 사회 고발적인 내용을 이렇게나 재미있게 만들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영화가 처음부터 시사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데 다 보고 나니 생각할 거리도 많고 우리가 사는 현 사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받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어쨌든 엮이고 엮인 인물들과 사건들, 숨 가쁘게 진행되는 여러 상황. 격투장면만큼은 우리나라 최고라고 생각하는 류승완 감독답게 짧지만 현실감 있는 액션장면. 그리고 배우들의 진짜 같은 연기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케이블 그 많은 광고를 참고 끝까지 다 볼 정도로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느낀 영화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봤을 때부터 좋아하는 감독이었지만 더욱 영화를 표현하는 방법이나 연출이 세련되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쁜 짓을 하면 없는 놈은 그냥 바로 골로 가는 거고, 있는 놈은 권력이든 돈으로든 법망을 피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거네, 였다. 입맛이 다 씁쓸해졌다.

이게 이 영화의 가장 간단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속으로 파고들면 더 많이 생각할 부분이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돈거래와 뇌물의 관례라든지. 승진이나 실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도덕적 잣대나 양심도 상실돼는 현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이라든지. 그것이 생활과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에 맞물리면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가 된다는 것도. 그래서 더욱 소시민으로서의 서글픔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도 있다.

 그리고 영화를 되새김하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의 아내와 어린 딸이 오히려 머리 굴려서 온갖 것을 가지려고 하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느낌도 전달받았다. 류승완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말이다.

끝으로, 황정민은 원래 연기 잘하는 거 알았지만, 류승범도 이제 정말 만만치 않게 잘한다. 유해진도 그렇고. 아니, 전우치에서의 그 초랭이랑 이 야비한 깡패가 어떻게 같은 인물이냐고. 새삼 놀랐다.

'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드라마를 보고  (0) 2013.01.29
댄싱퀸  (0) 2012.02.01